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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빠른 시대가 선택한 느린 스포츠, 피클볼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6
2025-10-30 04:01:00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5/10/30/0000053211_001_20251030040106803.gif" alt="" /><em class="img_desc">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em></span></div><br><br>"내 인생 마지막 운동이 될 것이다."<br><br>지난 9월 20일 경기도 고양 덕양구 행주동에 있는 피클볼장에서 만난 신태호 고양시피클볼협회 부협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3년 넘게 피클볼을 쳐왔다는 그는 "그간 골프, 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을 시도해 봤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면서도 "골프나 테니스는 돈·시간 등의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피클볼은 그 비율이 1~2%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br><br>피클볼은 아직 대한민국에서 생소한데, 테니스·배드민턴·탁구가 혼합된 형태의 스포츠다. 1965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조엘 프리처드 주(州)하원의원과 사업가 배니 매컬럼, 빌 벨은 아이들과 배드민턴의 대안을 찾던 중, 더 큰 탁구 패들(라켓)과 플라스틱 공, 높이를 낮춘 배드민턴 네트를 결합해 피클볼이란 새로운 종목을 만들어냈다.<br><br>이날 기자가 직접 다뤄본 피클볼 패들은 탁구 라켓과 생김새가 유사했다. 다만 볼이 닿는 단면이 플라스틱이고, 그 면적은 탁구 라켓보다는 더 넓었다. 플라스틱 공은 야구공보다 살짝 크고, 속도 조절을 위해 표면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었다. 신태호 부협회장은 "공기 저항을 받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라켓으로 공을 받아넘겨보니 플라스틱끼리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br><br>코트 크기는 배드민턴 복식 코트(6.1m×13.4m)와 동일한데, 배드민턴과 달리 특이한 점은 일명 '키친(Kitchen)'이라고 불리는 노발리존(No volley zone)이다. 코트 정중앙에서 양쪽으로 각각 약 2m 떨어진 이 구역에서는 땅에 공이 한 번 튀기기 전에 절대 공을 쳐낼 수 없다. 승부의 양상은 노발리존에서 공을 천천히 넘기며 진행되는 '딩크' 공방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빠른 스매싱이 주가 되는 탁구 등과 차별화되는 점이다.<br><br>분초를 다투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느리게도 즐길 수 있는 피클볼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인도·베트남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확연하다. 특히 베트남은 지난 1년간 피클볼 전용 코트가 약 1만개 이상 건립됐다. 미국 프로피클볼협회(PPA·Professional Pickleball Association)도 지난 여름부터 아시아 투어를 진행 중이다. 현재 피클볼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한국도 곳곳에서 그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br><br><strong>"2년 만에 회원 수 4배로 증가해"</strong><br><br>지난 9월 20일 오전 10시 행주산성 인근 고양시 행주 피클볼장에서 열린 제2회 고양특례시협회장배 피클볼대회는 피클볼 인기의 단면을 보여줬다. 고양 시내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내 설치된 다섯 면의 경기장은 경기를 앞둔 선수들로 빼곡했다.<br><br>이날 대회는 복식 35팀으로 총 70명이 참가했는데, 단세트 11점제로 진행되는 게임 특성상 회전율이 높아 다들 지루하지 않게 대회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경기장에서 만난 강태서 고양시피클볼협회장은 "협회 회원이 2023년까지만 해도 100여명에 불과했는데, 2년 만에 400여명까지 늘어났다"며 "작년 1회 대회에는 회원 300여명이 전부 참가등록을 해서 대회 진행에 3일씩이나 소요됐다"고 말했다.<br><br>4년간 피클볼을 쳐왔다는 강태서 협회장이 꼽는 피클볼 인기의 비결은 '적은 비용 부담과 낮은 진입장벽'이다. 우선 패들(라켓)을 구비하는 데 3만원대면 충분하다. 초보자가 배우기도 무척 쉬운 편이다. 신태호 부협회장은 "한 달만 배워도 금방 숙련자와 대결할 수 있고, 과장하면 2시간만 배워도 기본기는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옆에서 진행 중이던 경기를 예시로 들었다. 한 팀 선수들의 경력은 각각 2·3개월에 불과한 반면 상대팀은 모두 2년을 넘어간다. 하지만 경력이 긴 쪽의 일방적인 리드 없이 비슷한 점수대를 유지하는 모습이었다.<br><br>이를 보고 의욕이 생긴 기자 역시 대회 휴식시간에 피클볼을 배워보기로 했다. 다만 '쉽다'는 그들 말과 달리 초심자의 입장에서는 경기 속도가 상당히 빠르게 느껴져 공을 놓치기 일쑤였다. 강 협회장은 "탁구하듯 공의 움직임을 정확히 보기만 해도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패들을 지탱하듯 잡은 다음 부드럽게 넘기면 안정적이다"라고 조언했다. 이를 반영해 구멍이 여럿 뚫린 공을 끝까지 응시하고, 패들을 부드럽게 잡으니 익숙지는 않았지만 네트를 넘기기가 훨씬 쉬워졌다. '금방 적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br><br><strong>느림의 미학, 한국에 씨앗을 뿌리다</strong><br><br>1965년 미국에서 탄생한 피클볼은 2010년대 초반 만 50세 이상 장년층 대상 체육대회에 도입되면서 대중화됐다. 이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허진무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는 거기서 느꼈던 재미와 가능성을 품고 한국에 처음으로 피클볼을 도입했다. 허 교수가 피클볼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이래, 국내 피클볼 동호회 온라인 회원수는 2023년 1000여명에서 2년 만에 6500여명으로 급증했다. 대한피클볼협회는 대한체육회 인정단체 종목 인증도 준비 중이다.<br><br>지금도 대학에서 피클볼 전공 수업을 개설하는 등 피클볼 저변 확장에 힘쓰고 있는 허진무 교수는 "피클볼은 첫 연습 후 시합할 수 있는 실력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걸린다"며 "미국에서도 장년층과 어린 여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섞이는 모습이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먼 곳에서 강하게 드라이브 싸움을 하다가도 네트에 가까운 노발리존으로 이동해 딩크 공방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여기서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느린 속도를 참아내고 받기 힘든 위치로 공을 보내야 한다"고 피클볼 특유의 미학을 묘사하기도 했다.<br><br>허 교수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왕년의 테니스 스타가 피클볼에 입문하는 사례도 더러 존재한다. 1990년대 피트 샘프러스와 함께 남자 테니스계를 양분했던 안드레 애거시와 동시기 여자 테니스계를 독주한 슈테판 그라프 부부는 50세의 나이를 훌쩍 넘었음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건 패들까지 출시할 정도로 피클볼 선수로서 제2 인생을 보내고 있다.<br><br>허 교수는 "최상급 레벨에서 뛰는 선수 중에서도 배가 나오거나 비만인 경우가 많다"며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이면서도 공평한 스포츠가 피클볼"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스포츠는 엘리트 계층에서 출발해 생활체육으로 내려오는 톱다운(Top-down) 형태로 확산되지만, 피클볼은 반대로 생활체육에서 먼저 뿌리내린 독특한 사례"라며 "이 점이야말로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br><br>김경민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또한 "피클볼은 생활체육에서 먼저 자리 잡은 독특한 종목"이라며 "가족·노인층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해 올림픽 정식종목 선정도 머지않았다"고 전망했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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