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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막 갖다 쓰고, 다치면 또 갖다 쓴다"…KBO에 토종 에이스가 사라진 이유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15
2026-05-16 04:00:00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6/05/16/0000058330_001_20260516040008220.png" alt="" /><em class="img_desc">지난 5월 8일 서울 고척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키움 투수 안우진이 공을 던지고 있다. photo 키움 히어로즈</em></span></div><br><br>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한국 야구계에서 '투수 육성'이 화두로 떠오를 때마다 떠오르는 딜레마다. 한쪽에서는 KBO리그의 외국인 투수 의존이 문제라고 외친다. 선발 다섯 자리 중 두 자리를 외국인이 채우는 것도 모자라 아시아쿼터 제도까지 신설되면서 외국인 몫이 세 자리로 늘었다. 과거 한국프로농구 KBL에서 외국인 센터들이 자리를 독점하자 국내 유망주들이 센터 포지션을 기피하게 된 것처럼, 장기적으로는 아마추어 야구도 투수 육성이 어려워질 거라는 우려다.<br><br>반대 논리도 있다. 국내 투수들의 발전이 타자들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니 타고투저가 심해지고, 국내 선수만으로는 투타 밸런스를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외국인 투수는 반드시 필요하고, 아시아쿼터까지 데려와야 그나마 투타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논리다. 보는 관점은 반대지만, 한 가지만은 양쪽의 의견이 일치한다. 한국 야구가 국내 투수 육성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br><br><strong>20년 전엔 투수 천국</strong><br><br>외국인 투수 천하가 된 KBO리그에서 지난 7시즌 동안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은 국내 선수는 2022년 키움 안우진이 전부다. 한국의 사이영상 격인 최동원상도 최근 7년간 국내 투수 수상자는 2022년 김광현 하나뿐이다. 최동원이 누군지도 몰랐을 외국인 투수들이 그의 이름을 딴 상을 받으며 화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하는 장면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br><br>2000년대 초만 해도 사정은 정반대였다.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봉중근, 구대성, 류현진, 임창용, 오승환 등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한국 선수는 대부분 투수였다. 이들은 국가대표 마운드에서도 핵심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도, WBC 돌풍도 이 투수들이 앞장섰다. 반면 그 시절 타자 중 빅리그에 완전히 안착한 선수는 추신수 정도였다. 지금은 판도가 뒤집혔다.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 송성문 등 타자들이 잇달아 대형 계약을 따내며 미국 무대를 두드리는 사이, 투수 중에 메이저리거로 자리를 잡은 경우는 보기 드물다. 한국에서 특급 마무리였던 고우석이 2023시즌 뒤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맺고 미국에 건너갔지만, 3년째에도 빅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하고 있다. 그 여파는 국제대회로 이어진다. 문동주와 원태인이 부상으로 빠진 올해 WBC에서 한국 마운드의 선발 주축은 30대 노장 류현진(한화)과 고영표(KT)였다.<br><br>문제 해결의 시작은 정확한 진단이다. 이 점에서 투수 부족의 원인을 아마추어 선수들의 훈련량 부족이나 주말리그, 학업 병행 탓으로 돌리는 관성적인 비판은 반쯤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아마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한 지도자는 "요즘은 150㎞를 가볍게 던지는 투수가 정말 많아졌다. 10년 전만 해도 140㎞짜리 투수가 한 팀에 한 명꼴이었는데, 최근에는 150㎞가 새 표준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그 A구단 스카우트도 "투수 유망주 수준이 전보다 떨어졌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매년 빅리그 구단들이 관심을 보이고 데려가는 투수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 체격조건이나 운동능력, 메커니즘 면에서 이전 세대보다 좋아지면 좋아졌지 떨어진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br><br>훈련량이 줄었다는 지적에도 반론이 나온다. 서울권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한 지도자는 "옛날처럼 한 투수가 5일 연속 등판해서 프로에 오기도 전에 수술대에 오르고 몸이 망가지는 경우는 많이 줄지 않았나. 어린 투수들은 나이와 신체 발달에 따라 단계별로 투구량을 늘려가야 한다. 무조건 많이 던지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한 아마야구 관계자는 "아직도 유소년이나 고교 레벨에서 국제대회에 나가면 일본·대만은 물론 중남미 팀과 대등하게 싸우고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한 뒤 국제대회에서 다시 붙었을 때는 크게 밀린다. 물론 아마추어에서도 개선할 부분은 있겠지만, 진짜 문제는 '성인 레벨에서 왜 이렇게 투수들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가'라고 본다"는 질문을 던졌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6/05/16/0000058330_002_20260516040008308.gif" alt="" /><em class="img_desc">롯데 자이언츠 투수 김진욱 photo 롯데 자이언츠</em></span></div><br><br><strong>KBO 육성시스템 문제</strong><br><br>그렇다면 성인 레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프로구단 출신 한 야구인은 "KBO리그는 투수를 장기적 플랜으로 육성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잘라 말한다. 얇은 육성 시스템, 성적 지상주의, 만성적인 투수 부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미국은 마이너리그가 5개 단계로 나뉜다. 루키레벨부터 단계를 밟으며 구종을 장착하고, 제구를 다듬고, 멘탈을 단련한다. 물론 작년 사이영상 투수 폴 스킨스처럼 초고속으로 단계를 건너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투구 이닝을 조금씩 늘린다. 일본도 2군은 물론 3군까지 활성화돼 있다. 반면 한국은 퓨처스리그(2군) 팀이 육성 과정의 전부다. 프로구단 육성팀 출신 인사는 "변화구 하나만 제대로 개발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1년 동안 훈련하고 로테이션을 돌면서 실전에서 활용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우리는 급한 대로 잘 던지면 1군에서 바로 올려서 쓴다"고 했다. 다른 지방구단 관계자도 "선수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현실이 그렇다"고 아쉬워했다. 이런 식으로 1군에 올라온 투수는 대부분 선발이 아닌 불펜에 배치된다. 1군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면 혹사 위험에 노출되고, 그러다 다치면 재활 혹은 수술로 1년이 증발한다. 군 문제까지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선수의 황금기가 지나가 있다. 한창 육성하고 롱런의 기반을 쌓아야 할 시기를 날려버리는 셈이다.<br><br>투수와 야수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지방구단 관계자는 "투수에 비해 야수층은 두꺼운 편이다. 1군에 기량 뛰어난 야수들이 많고 2군 야수들과 차이가 커서, 야수는 2군에서 차분히 육성할 수 있다. 반면 투수는 1군도 워낙 부족하니 2군에서 꾸준히 키우기가 어렵다. 전형적인 악순환"이라고 했다. 감독은 당장 성적을 내야 하고, 구단 수뇌부도 임기가 길지 않다. 육성팀 출신 인사는 "우리 야구계에 투수가 없는 건 투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졌다. "1군에 투수가 없으니 막 갖다 쓰고, 다치면 또 갖다 쓴다. 그러다 보면 계속해서 좋은 투수가 없다"는 설명이다.<br><br>리그에서 그나마 가장 투수 육성에 성공한 팀이 '리빌딩'을 외치며 매년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독식하는 팀들이 아니라, 최근 3년간 두 차례 우승한 강팀 LG 트윈스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LG는 1군 투수층이 두꺼워 2군 투수들이 쉽게 올라오지 못하는, KBO에서 몇 안 되는 팀이다. 덕분에 갓 입단한 유망주들이 2군에서 시간을 갖고 성장할 수 있다. 차명석 단장이 장기 재임하며 지속적이고 일관된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핵심이다. 코치들도 3년 이상 계약을 맺기에 중간에 지도자가 교체되면서 방향이 흔들리는 일이 없다. 공만 빠른 상태로 입단한 투수가 다른 팀에서는 1군에 바로 올라가 강타자들 상대로 애를 먹고 망가질 동안, LG에서는 차근차근 2군 경험을 쌓으며 제구를 잡고 변화구를 추가하고, 준비가 됐을 때 올라온다. 1군에 올라온 뒤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라운드 신인 김영우에게 염경엽 감독은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부터 던지게 하며 편안하게 적응할 시간을 줬다. 이후 조금씩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중요한 상황으로 투입 범위를 넓혔다. 다른 팀이었다면 바로 마무리나 필승조로 밀어넣었을 것이다. 그게 독이 되는 경우를 다른 구단 불펜 투수들에게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투수력이 풍족한 팀이 풍족하다는 이유로 더 풍족해지고, 투수가 빈곤한 팀은 그 빈곤함 때문에 투수를 더 키우지 못하는 일종의 마태효과가 작용하는 셈이다.<br><br><strong>"육성은 현장의 협조가 필수"</strong><br><br>최근 리그에서 화두로 떠오른 제구 문제도 비슷하다. 투수 출신의 한 구단 관계자는 최근 화제가 된 강속구 유망주 사례를 들었다. 아마추어 시절 150㎞대 강속구에 제구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프로에 와서는 스트라이크를 좀처럼 못 던져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막상 데려와서 보니 심장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더라. 1군급 강한 타자들을 상대로 맞을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보니 스트라이크 던지기를 하는 데 애를 먹더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하나같이 제구가 나쁜 투수더러 말로는 가운데 넣으라고 하지만, 막상 그러다 맞으면 질책하거나 2군으로 내려보낸다"면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일단 잠재력이 있는 투수 아닌가. 그런 투수들을 잘 키우려면 현장 감독이나 코치들도 협조를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LG 염경엽 감독은 "공 빠른 투수는 반드시 시간이 걸린다. 개인적으로는 5년은 걸린다고 본다"고 말한다. 공은 빠른데 제구가 약한 투수들에겐 '무조건 가운데를 보고 던지라'고 주문한다. 제구가 안 되는 투수에게 코너를 겨누게 하면 완전한 볼이 되거나 한가운데로 몰린다. 대신 한가운데를 향해 최대한 강하게 던지게 하면, 자연스럽게 코너워크가 살거나 설령 한가운데로 몰려도 공에 힘이 있어 공략하기 까다롭다. 염 감독은 "볼넷 주면 2군으로 내려보내지만 안에다 던지다 맞으면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가운데 던지다 맞아도 팀 승패가 결정나는 상황은 거의 오지 않는다. 애초에 투수의 능력을 뛰어넘는 상황에 기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수력이 넘쳐나고 여유가 있는 LG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br><br>류현진처럼 처음부터 구속, 제구, 변화구, 경기 운영 능력을 고루 갖춘 투수는 드물다.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대개는 공은 빠르지만 제구가 거칠거나, 제구와 경기 운영은 좋지만 구속이 아쉽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프로에서 좋은 투수로 성장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기다려줄 환경도, 선수층도, 인내심도 없으니 투수는 부족한 채로 소비되고 또 소모된다. 타자들의 눈부신 발전 속도와 대조되니 투수들의 부진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타자는 강한 투수와 자주 만나면서 기량이 발전하지만, 투수가 좋은 타자와 상대하면서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 MLB 스카우트는 "한국야구의 야수 풀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국제 기준으로 봐도 파워나 기술 면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투수 육성에서 시행착오가 길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나마 올 시즌 초반에는 희망의 싹이 보인다. 롯데 김진욱은 데뷔 이후 매년 기대를 모았지만 좀처럼 알을 깨지 못하다가, 올 시즌 완전히 잠재력이 터지는 모습이다. 두산 최민석과 SSG 김건우도 지난해 경험을 발판으로 올 시즌 1군 국내 에이스로 도약했다.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이따금 껍질을 깨고 솟아오르는 선수들이 있다. 좋은 유망주가 없는 게 결코 아니다. 이런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토양과 환경을 만드는 게 과제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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