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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뉴스]영화 《세계의 주인》이 전하는 온기, 상처투성이 세계를 끌어안다

온카뱅크관리자

2025-11-02 13:01:38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과거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둘러싼 세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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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 기사에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세계는 얼마나 복잡다단한 모양인가. 과거와 현재는 일상 안에서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영화 《세계의 주인》은 어린이의 세계를 내밀하게 들여다본 전작 《우리들》(2016)과 《우리집》(2019)으로 어른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던 윤가은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씩씩하고 밝은 고등학생 주인(서수빈)이 전교생 서명 운동에 홀로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은 파장을 들여다본다. 오늘도 우리와 같이 세계의 일부로 자리하며, 때론 상처 입더라도 사랑으로 나아가는 미래를 꿈꾸는 인물. 주인이라는 해사한 용기의 이름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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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영화 《세계의 주인》의 한 장면 ⓒ㈜마인드마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2/sisapress/20251102130139674girx.jpg" data-org-width="800" dmcf-mid="qLqTssPKu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2/sisapress/20251102130139674girx.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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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계의 주인》의 한 장면 ⓒ㈜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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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생한 육체성이 말하는 것들
 열여덟 살. 성인으로 향하는 문턱에서 성(性)은 중요한 관심사이자 몸으로 닥쳐오는 급변이다. 알알이 영그는 유년기의 성장을 다뤘던 기존 연출작들과는 다르게 고등학교 교실로 무대를 옮긴 윤가은 감독의 시선은 필연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예사롭지 않은 사운드가 들려오던 암전 상태가 지나가고 등장한 첫 장면은 남자친구와 키스하는 주인의 모습이다. 교복 차림의 두 청소년이 감미롭다기보다 전투적인 태도로 얼굴을 밀착하고 있다.
 첫 장면을 포함해 얼마간 이어지는 육체성의 포착은 영화가 주인을 소개하는 가장 처음의 방식이다.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몸을 던지다시피 열중하고, 시끌벅적한 복도와 교실에서 친구들과 부대끼며 깔깔대는 활기가 온통 주인의 것이다. 오래 관계를 이어온 듯한 이들과 청소 봉사활동을 할 때도, 남동생을 씩씩하게 진두지휘하며 어질러진 집 안을 청소할 때도 궁극의 활기가 주인의 곁에 맴돈다.
 생생함. 활기차게 살아있음. 이 감각으로서 소개되는 주인은, 이후 주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밝혀진 이후 곱씹을수록 더 적절하게 느껴지는 《세계의 주인》의 인상적 진입로다. 특정 사건의 '생존 피해자다움'이라는 말은 기실 얼마나 많은 것을 적절하게 설명해 내지 못하는가.
 본격적 갈등은 전교생이 동의하는 일을 주인이 홀로 완강히 거부하면서 불거진다. 동급생 수호(김정식)는 아동 성범죄자가 출소 후 동네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인다. 주인은 수호가 쓴 일부 문장을 문제 삼는다. '평생 씻지 못할 깊은 상처' '한 사람의 인생과 영혼을 파괴하는' 같은 표현이 틀렸다는 게 요지다. 둘 사이 갈등이 점차 고조될 무렵, 교실 한가운데에서 주인이 절반쯤은 홧김에 우렁차게 소리친다. "그래, 나도 피해자다! 내 인생이 끝장난 거 같애?" 그리고 이내 농담이었다며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주인에게 교실의 일부는 탄식하고, 또 다른 일부는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후 주인에게 그 행동을 지탄하는 익명의 쪽지가 날아든다.
 그간 어린이들의 생태계를 주목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에 대한 오해는, 짐짓 그것이 작고 말랑말랑하며 어여쁜 모양일 것이라는 섣부른 착각이다. 그 안의 갈등과 반목은 결코 그리 간단하거나 가볍지 않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의 심리 관찰은 미스터리를 추적해 가는 문법을 슬그머니 닮아있기도 하다. 《세계의 주인》은 미스터리를 한층 더 적극적인 동력으로 삼는다. 주인의 아빠가 집 안에 부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엄마 태선(장혜진)의 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생이자 수호의 어린 여동생의 몸에 난 상처는 주인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쪽지를 보내는 이는 누구이며 그 의도는 무엇인가.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둔 틀 안에서 지레짐작을 반복하며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주변을 들여다보는 움직임에도 변화가 있다. 한 명의 주인공에게 밀착해 서사를 진행하던 기존 작품과 달리 이번 영화에 이르러 윤가은 감독은 3인칭으로 시야를 확장한다. 그 결과 모두가 하나의 세계 안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가 한층 또렷하게 제시된다. 영화는 과거를 재연하는 불필요한 폭력 대신 현재에 최선으로 집중한다. 다만 기계식 세차장에서 차가 씻기는 동안 해묵은 원망을 쏟아내며 소리치고 우는 딸의 울분을 묵묵히 받아주다 그저 "한 번 더?"라고 물으며 차를 돌리는 엄마의 반응으로써, 이 가족이 오래도록 반복하며 쌓아온 시간의 층위를 애틋하게 상상하도록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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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영화 《세계의 주인》의 포스터 ⓒ㈜마인드마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2/sisapress/20251102130140957ojfu.jpg" data-org-width="580" dmcf-mid="b9ByOOQ9z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2/sisapress/20251102130140957ojfu.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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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계의 주인》의 포스터 ⓒ㈜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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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무결함이 아닌 세계로부터
 주인공에게서 나온 내밀한 고백의 순간을 극의 클라이맥스가 아닌 중간에 배치한 것은 그 발언이 불러오는 파장의 여파를 섬세하게 관찰하려는 명확한 목표를 지닌다. 주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인물들이 주인의 시선을 통해서가 아닌 그들 고유의 장면들을 가지는 이유다. 남몰래 술에 의지하는 엄마가 게워냈던 현관의 토사물, 죄책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아빠의 부재, 누나의 마음을 공연히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속 깊은 남동생이 몰래 숨겨둔 침대 밑 편지들. 과거가 남긴 상흔을 끌어안고 일상을 살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둘러싼 세계의 풍경은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얼굴을 하고 그제야 다시 찾아온다.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법 앞에서 어떤 상황을 마주하는지는 봉사 모임의 일원이자 주인의 멘토를 자처하는 미도(고민시)를 통해 조금 더 구체화된다. 법정에 미성년자 캐릭터인 주인을 세우는 대신 성인 캐릭터를 세운 것 역시 이 영화의 사려로 읽힌다. 학창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미도는 부족한 용돈을 충당하려 입시학원비를 조금 더 요구했다는 이유로, 태권도 대회에서 수상한 뒤 아버지에게 밝게 웃어 보였다는 이유로 진위를 추궁당한다. 타 집단이 당사자들에게 무심하게 떠올리는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데서 당하는 곤궁이다.
 한편 교실 안은 주인의 발언에 대한 각자의 해석으로 분주하다. 단순한 기호일지 모를 것까지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받아들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정상인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걸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난무한다. 별다른 악의는 없는 이들의 태도는 때로 진심과 어긋나 오역된다. 영화는 그저 이 모든 모습을 바라보고 그에 다시 반응하는 주인의 얼굴과 태도를 비춘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모아둔 쪽지를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을 연습하던 남동생 해인(이재희)의 마술쇼는 결국 실패한다. 일어난 일의 잔여를 말끔하게 없애는 것은 마술로도 역부족이어서다. 이것이 주인이 속한 세계라는 사실. 완전무결한 곳이 아니라 실망과 실수와 위로와 진심과 오해가 한데 뒤섞인 풍경이라는 인지. 《세계의 주인》이 말하는 것들이다.
 "난 네가 너무 어려워." 주인의 남자친구가 주인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복합적인 인간 본연의 기질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일정한 성질로 이뤄진 존재가 아니다. 《세계의 주인》은 성과 사랑에 호기심 넘치는 10대 청소년이 생존자의 다른 얼굴일 수도 있음을, 한 아이의 몸에 남은 상처의 모양에는 다른 진실이 있을 수도 있음을 말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이미 지나버린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머무르며 자기 자신과 영영 불화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 진로로써 사랑을 희망하는 인물인 이주인을 본다. 《세계의 주인》은 한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이 그의 세계 전체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 '나'라는 세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라는 힘차고 미더운 선언이다. 이 온기를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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