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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한 팀 27명, 경기 내내 주먹질…400년전 피렌체 ‘피의 축구’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9
2025-09-27 00:02:00
<div class="ab_sub_heading" id=""><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 허진석의 스포츠 라운지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div class="ab_photo photo_center"> <div class="image">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53/2025/09/27/0000053099_001_20250927000220217.jpg" alt="" /><em class="img_desc">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광장에서의 축구 경기 모습. 1561년과 1562년 사이에 열린 경기로 추정되며 16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지오반니 스트라다노가 그렸다. [사진 위키백과]</em></span> <span class="mask"></span> </div> </div> 2018년 6월 18일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은 이렇게 시작된다. “리어왕의 충신인 켄트 백작은 무례한 하인 오스왈드를 넘어뜨리며 말했습니다. ‘축구나 하는 천한 놈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 1막 4장에 등장하는 장면이지요.” <br> <br> 2014년 크리스마스이브, 나도 한 경제지 지면에 비슷한 문장을 썼다. “‘You base football player.’ 이 문장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에 등장하는 대사다. 1막의 4장. 리어 왕의 충신 켄트 백작이 무례한 하인 오스왈드를 넘어뜨리며 이 대사를 한다. 번역가들은 보통 “축구나 하는 이 천한 놈아”라고 번역한다. 아무튼 욕이다. (중략)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뱉은 욕이므로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이었을 것이다.” <br> <br> <b>적 앞에서 축구판 벌인 피렌체 시민들</b> <br> 왜 하필 축구선수일까? 먼저 시간의 자물쇠를 풀어야 한다. ‘리어 왕과 그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기록한 사람은 연대기 작가인 몬머스의 제프리(Geoffrey of Monmouth)다. 그는 켈트족의 전설과 로마 침략 이전 브리튼의 역사에 자신의 상상력을 버무려 이야기를 완성했다(설준규, 『셰익스피어 비극의 역사성』). 그러나 우리는 『리어 왕』을 역사물로 보지는 않는다. 작품을 이해하려면 셰익스피어를 알아야 한다. <br> <br> 셰익스피어의 작품 대부분은 사후에 헨리 콘델과 존 헤밍이 정리했다.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 판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영어 작가’다. 작품에 2035개나 되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 중 800여 개는 아직도 사용된다. generous(후한), lonely(외로운), majestic(위풍당당한), manager(매니저), gloomy(우울한) 같은 단어들이다(김환영, 『김환영의 영어 이야기』).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언어는 당연히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이었을 것이다. <br> <br> 김환영은 셰익스피어를 ‘고급영어로 올라서는 데 필요한 마지막 관문’이라고 했다. 1605년 옥스퍼드의 보들리언 도서관이 소장한 책 6000여 권 중 영어로 쓰인 책은 36권에 불과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를 거치며 영어의 지위는 달라졌다. 셰익스피어 연구자 스탠리 웰스는 “셰익스피어의 출생 기록은 라틴어로 돼 있지만 사망 기록은 영어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 숭배론』에서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br> <br>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은 인물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무대는 도시다. 빛나는 자유정신과 활발한 교역을 통해 르네상스는 유럽을 품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이탈리아 도시를 배경으로 삼는다. 『로미오와 줄리엣』 『베로나의 두 신사』는 베로나, 『오텔로』 『베니스의 상인』은 베네치아, 『헛소동』 『겨울이야기』는 시칠리아,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파도바, 『끝이 좋으면 다 좋아』는 피렌체. …피렌체! <br> <br>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을 쓴 리처드 폴 로는 셰익스피어가 틀림없이 이탈리아를 여행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장소와 문화에 대한 언급은 매우 독특하고 구체적”이라며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을 현장에서 얻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문득, 『리어 왕』을 쓰면서 셰익스피어가 떠올린 축구는 어느 르네상스 도시에서 보았을 이탈리아 축구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br> <br> 축구는 고향을 특정하기 어렵다. 스위스 취리히대의 헬무트 브링커 교수는 2004년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에 기고한 『축구의 발상지』에서 ‘중국기원설’을 제기했다. ‘공차기’는 진시황(BC 246~210) 때부터 시작됐으며 한나라(BC 206~AD 220) 때는 규칙과 경기장 등이 갖춰졌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위대한 문명의 시대를 사로잡은 공놀이 ‘울라마’가 있었다. 우리 『삼국유사』에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蹴鞠)’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br> <br> <div class="ab_photo photo_center"> <div class="image">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53/2025/09/27/0000053099_002_20250927000220267.jpg" alt="" /><em class="img_desc">1857년 창단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으로 기록된 셰필드FC의 1901년 팀 사진. [중앙포토]</em></span> <span class="mask"></span> </div> </div> 서양에서는 기원전 7~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한 하패스톤에서 발달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영국이 축구의 종주국인 이유는 이 경기를 근대 스포츠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1848년에 작성된 ‘케임브리지 규칙’은 현대축구의 기초가 되었다. 185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으로 기록된 셰필드FC의 창단을 계기로 ‘셰필드 규칙’이 성립했다. 1863년 10월26일에는 런던의 스포츠클럽 열세 곳과 여러 학교 대표가 프리메이슨 태번이라는 선술집에 모여 축구협회(FA)를 창설했다. <br> <br> 1530년 2월 17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 피렌체의 축구가 역사에 기록을 남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피렌체를 포위했을 때다. 시민들은 산타 크로체 광장에서 축구를 했다. 적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렌체의 기상을 보여주기 위해 벌인 축구판이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날 이후 축구는 피렌체의 축제에서 빠진 적이 없다. 이 경기를 ‘칼치오 (스토리코) 피오렌티노’라고 한다. 1555년부터 피렌체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다. <br> <br> 경기 규칙은 이렇다. 한 팀은 스물일곱 명, 경기 시간은 50분, 경기장은 모래가 깔린 길이 80~100m의 직사각형이다. 상대팀 엔드라인을 따라 설치된 높이 1m 남짓한 골에 공을 넣어 득점한다. 경기는 살벌하기 짝이 없다. 주먹질과 발길질이 먼저 오간다. 장정들이 피를 흘리며 픽픽 쓰러진다. 제대로 선 선수가 없어 경기장이 한산할 즈음 진짜 공방전에 불이 붙는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모두 만신창이다. 이긴 팀에 주는 상품은 키아니나 소(牛)다. <br> <br> 요즘도 피렌체에서는 6월 셋째 주에 칼치오 경기가 열린다. 장소는 산타 크로체 성당 앞 광장이다.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갈릴레오·마키아벨리 등 르네상스 시대 인물들과 시인 포스콜로, 작곡가 로시니와 같은 유명인이 묻혔기에 ‘피렌체의 판테온’으로 불린다. 다비드 상과 넵투누스 분수, 로지아 데이 란치가 저마다 빛을 내는 시뇨리아 광장에 없는, 영적(靈的)인 힘이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고 있다. <br> <br> <b>『삼국유사』에 나온 김유신·김춘추 ‘축국’</b> <br> 2015년 9월 9일. 나는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 멈추었다. 시인 단테의 조각상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곡』의 작가, 베키오 다리에서 마주친 소녀 베아트리체를 평생 사랑한 남자. 그의 무덤은 라벤나에 있다. 광장에는 태양빛이 불화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불꽃 하나가 나의 뇌수를 꿰뚫고 지나갔다. 셰익스피어가 1608년 『리어 왕』에 쓴 ‘축구선수 같은 놈’의 의미가, 계시처럼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피렌체의 뜨거운 축구가 총천연색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br> <br> 공은 인간을 매혹한다. 문명의 새벽부터 ‘둥근(round)’ 물체는 인간을 사로잡았다. 인간은 해와 달을 바라보며 우주를 살폈고 그들이 원을 그리며 운동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늘의 운동은 종교와 철학을 거쳐 과학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완벽한 동그라미’일 공은 가장 경쟁적인 운동 경기의 핵심에 자리 잡았다. 하나 축구의 신은 젊은 심장을 요구한다.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절대자처럼 냉혹하다. <br> <br> 멕시코의 고대 유적지 치첸이트사에는 ‘신의 경기장’이 있다. 경기장 벽을 장식한 조각 일부는 인간을 제물로 바친 의식을 표현한다. 희생된 선수의 몸에서 솟구친 피가 뱀 일곱 마리에게 나누어지고 있다. 각 팀의 주장으로 보이는 선수 사이에 선 집행자가 사람의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진 팀의 주장이 목숨을 바쳤을 테지만 이긴 팀 선수 모두가 제물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 그랬듯, 경기는 신을 위한 제의(祭儀)였으므로. <br> <br> 『리어 왕』의 축구는 해마다 산타 크로체 광장을 땀과 눈물로 적셨을 칼치오 피오렌티노, 그 피의 잔치였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한없이 비루하며, 온몸을 던져 넣되 앞뒤 가리지 않는 야만을 간직한 원초적 행위. 셰익스피어가 칼치오 피오렌티노의 무엇을 보고 『리어 왕』의 대사를 썼는지 알 수 없다. 성속(聖俗)을 어찌 구분하랴. 그 날 나는 광장의 포석 위에 이글이글거리는 한낮의 열기, 그 황홀한 백일몽에 정신을 빼앗겼다. <br> <br> <div class="ab_photo photo_center"> <div class="image">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53/2025/09/27/0000053099_003_20250927000220323.jpg" alt="" /></span> <span class="mask"></span> </div> </div> 허진석 한국체육대 교수. 스포츠 기자로 30여 년간 경기장 안팎을 누볐으며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다. 2023년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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