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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부정행위 권투선수, 고대 그리스선 동상에 새겼다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32
2025-03-15 00:42:00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margin-bottom:16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 허진석의 스포츠 라운지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아무리 큰일이라도 미디어가 관심을 끊으면 이내 잊힌다. 산토리니의 지진은 잦아들었나. 아테네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물으니 여진이 계속된다고 한다. 주민들의 삶이 정상화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산토리니는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이기도 한다. 섬의 남쪽, 석양이 아름다운 이아마을을 마주보는 바닷가에 아크로티리가 있다.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키클라데스 청동기 문화가 잠든 곳이다. 아크로티리는 기원전 1600년 전후에 화산 폭발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867년 이후 발굴이 거듭되었다. <br> <br> 아크로티리 유적은 놀랍다. 광장과 주요도로, 상하수도 시설 등 인프라가 완벽하다. 주택은 거실과 침실, 주방, 창고가 조화롭게 배치됐다.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수준 높은 프레스코화도 여러 점 발견되었다. 권투경기를 표현한 작품도 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포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인물은 체격이 날씬하고 얼굴이 곱다. 여성처럼 보이지만 남성의 격투다. 손에 글러브를 끼고 있다. 머리모양은 그들이 살던 시대에 가장 힙한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br> <br> <b>88올림픽 복싱도 판정 스캔들 휘말려</b> <br> <div class="ab_photo photo_center"> <div class="image">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53/2025/03/15/0000050961_001_20250315004218241.jpg" alt="" /><em class="img_desc">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권투 선수를 묘사한 로마국립박물관의 청동상. [사진 픽사배이]</em></span> <span class="mask"></span> </div> </div>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 군대에서 권투를 훈련했다는 문자 기록이 남아 있다. 크레타 섬의 유적지에서는 권투 경기를 묘사한 암포라 장식화가 발굴되기도 했다. 권투가 언제 시작됐는지 알려면 신화 세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그리스 신화는 태양신 아폴론이 군신(軍神) 아레스와 싸워 이긴 다음 이 승리를 기념한 데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도 ‘위험한 운동’ 권투가 등장한다. 내용은 이렇다. <br> <br> 트로이 전쟁이 한창이다.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 왕자 헥토르의 손에 죽는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여 복수한 다음 친구를 추모하는 운동 대회를 연다. 맨 먼저 전차경주, 그 다음 권투경기가 열린다. 에페이오스가 에우리알로스의 턱에 보기 좋게 한 방 날려 승리를 거둔다. 승자에게 여섯 살배기 암컷 노새, 패자에게 손잡이가 둘 달린 잔을 수여했다. 이후 레슬링·달리기·창술경기·포환던지기·활쏘기·창던지기 등이 이어진다. <br> <br> 역사가들은 트로이 전쟁을 기원전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있었던 사건으로 본다. 에라스토테네스는 기원전 1184년,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1250년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고고학은 기원전 1200년 전후에 들어선 트로이의 7기 유적을 호메로스 시대의 산물로 비정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리아스』에서도 에페이오스와 에우리알로스는 가죽 감은 주먹을 주고받았다. <br> <br>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의 권투는 잔혹했다. 한쪽이 쓰러져 못 일어나거나 항복할 때까지 치고받았다. 선수는 코피가 터지고 피부가 찢어지고 이가 부러졌다. 로마국립박물관에 있는 권투선수의 청동상과 아테네 케라메이코스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양각화는 흉터로 뒤덮인 얼굴, 부러진 코뼈, 퉁퉁 부어올라 일그러져버린 귀를 묘사했다. 도기에 그린 그림은 선수의 코에서 쏟아지는 선혈을 보여준다. <br> <br> <div class="ab_photo photo_center"> <div class="image">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53/2025/03/15/0000050961_002_20250315004218304.jpg" alt="" /><em class="img_desc">그리스 아크로티리 유적에 남아 있는 권투경기 벽화. 날씬한 체격의 인물들이 손에 글러브를 끼고 있다. [사진 허진석]</em></span> <span class="mask"></span> </div> </div> 특히 경기를 마친 권투 선수를 묘사한 로마국립박물관의 청동상은 만신창이가 돼버린 사나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눈 주위 곳곳이 찢어져 엉망이 된 데다 귀는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얼마나 맞았는지 눈두덩이 심하게 부어 두 눈이 우물처럼 깊이 파묻혔다. 이 선수는 경기에서 이겼을까? 아무리 보아도 이긴 선수의 얼굴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참혹하다. <br> <br> 고대의 자료들 가운데는 권투선수들이 외모가 너무 망가지는 바람에 가족이나 친지조차 모습을 알아보지 못해 유산을 상속받을 때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도 있다. 가이우스 루킬리우스는 기원전 2세기 전후를 살다 간 로마의 시인이다. 그가 쓴 풍자시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br> <br> “아우구스투스여, 지금 나타난 이 사나이 올림피코스도 한 때는 코, 턱, 이마, 귀, 눈꺼풀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권투선수 조합에 가입했고, 그 결과 유언장에 기록된 유산의 자기 몫을 받지 못했다. 유언장과 관련된 소송에서 형제들이 올림피코스의 초상화를 판사에게 보여주었지만 초상화와 전혀 닮지 않은 사기꾼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br> <br>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2008년에 방영한 ‘파이트 사이언스’는 운동역학 등 과학기술을 이용해 각종 무술의 위력을 확인한다. 권투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도 비교는 가능하다. 미국의 우슈 챔피언 알렉스 후인의 주먹속도가 초속 12.2㎞였다. 상대의 주먹이 1m 거리에서 0.1초 이내에 내 머리를 가격하는 것이다. 인간의 반응 속도는 0.1초 이상이다. 일류 선수도 상대 주먹을 보고 피하기는 어렵다. 올림피코스의 얼굴도 무수한 주먹에 뭉개졌을 것이다. <br> <br> 권투는 기원전 688년에 열린 23회 대회부터 올림피아의 정식종목이 됐다. 가장 성공한 선수는 로도스 사람 디아고라스다. 그는 기원전 464년에 열린 올림피아에서 우승했고, 네메아 경기를 두 번, 이스트미아 경기를 네 번 제패했다. 그의 두 아들도 기원전 448년 올림피아에 나가 판크라티온과 권투에서 우승했으니 철권가문이다. 하지만 권투가 모두에게 달콤한 운동은 아니었다. <br> <br> 기원전 496년에 열린 올림피아에서 경기 도중 선수가 죽자 이긴 선수의 우승자 자격을 박탈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권투는 2500년 전에도 위험한 운동이었다. 상대의 머리에 충격을 가하는 운동이므로 안전할 수가 없다. 국내 보험회사들은 직업직종에 따른 위험등급을 분류해 보험계약에 차등을 둔다. 권투는 레슬링·태권도·미식축구 등과 함께 가장 위험등급이 높은 종목으로 평가된다. <br> <br> 수많은 선수들이 경기 도중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다. 한국 권투 팬들의 기억에는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김득구가 사망했을 때의 충격이 선명하다. 경기 도중이나 직후 사망하지 않아도, 혹은 부상을 했다가 회복해도 후유증이 엄청나다. 무하마드 알리의 파킨슨병도 당대의 철권 소니 리스튼,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켄 노턴 등과 싸우며 맞은 충격이 누적된 결과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br> <br> <b>김득구 선수 경기 도중 머리 다쳐 숨져</b> <br> <div class="ab_photo photo_center"> <div class="image">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53/2025/03/15/0000050961_003_20250315004218402.jpg" alt="" /><em class="img_desc">아크로티리 유적지 전경. [사진 허진석]</em></span> <span class="mask"></span> </div> </div> 경기 도중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위험한 격투기였던 권투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정정당당한 승부였다. 그러나 무엇에 가치를 두는 것과 그 가치를 실천하는 일은 다른 문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유적들은 올림피아의 오염을 증언한다. 당시 심판들은 부정을 저지르거나 규칙을 어긴 자를 가려내 벌금을 부과하였다. 이 벌금으로 경기장 입구에 제우스의 동상인 자네스(Zanes)를 세웠다. 자네스는 올림피아 방언으로 제우스의 복수형이다. <br> <br> 기원전 388년에 열린 제89회 올림피아에서 테살리아의 권투 선수 에우폴루스가 할리카르나소스의 포르미온 등 경쟁자 세 명에게 돈을 주고 승부를 조작했다가 발각됐다. 에우폴루스는 그들과 함께 자네스 6개를 세웠다. 자네스 받침돌에는 ‘승리는 돈이 아니라 빠른 발과 체력으로 얻어야 한다’고 적었다. 현재 엘리스에 있는 올림피아 경기장 입구에는 자네스 받침돌 16개가 남아 있다. 돌에 새긴 이름과 출신지, 처벌 사유가 오늘날까지 전한다. <br> <br> 권투는 우리에게도 불편한 기억을 남겼다.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는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에서 한국의 박시헌에게 3:2 판정패를 당했다. 박시헌이 불리한 경기를 했다고 판단한 전문가가 많았기에 판정시비가 일었다. 미국은 불만을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메달을 요구했다. 존스는 한국이 심판들을 매수했다고 줄곧 주장했다. 그들의 집요한 노력은 10년이 지나서야 실패로 막을 내렸다. <br> <br> 1997년 5월 22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몬테카를로 집행위원회에서 금메달을 돌려달라는 존스의 요구를 기각했다. 프랑수아 카라르 집행위원장은 “1988년의 판정을 재고할 만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모로코인 주심 히두아드 라비는 “돈을 받기는 했지만 부대비용을 처리하기 위해 대회조직위원들로부터 받은 것이라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IOC의 결정이 어쨌든, 판정 스캔들은 언론과 기록을 통해 서울올림픽의 자네스로 남았다. <br> <br> <div class="ab_photo photo_left " style="width: 205px;"> <div class="image">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53/2025/03/15/0000050961_004_20250315004218482.jpg" alt="" /></span> <span class="mask"></span> </div> </div> 허진석 한국체육대 교수. 스포츠 기자로 30여 년간 경기장 안팎을 누볐으며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다. 2023년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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